도서 이야기, 데미안

안녕! 오늘은 내가 진짜 인생 갈아 넣어서 읽고 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데미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사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가 대학교 휴학하고 방황하던 스물둘 겨울이었거든. 카페 창가에 앉아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첫 장을 넘기는데,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그것을 나는 살아가려고 했다"라는 그 유명한 구절을 읽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거야.


남들이 보기엔 평범하게 대학 다니고 취준 걱정하는 평범한 20대 여자였지만, 내 안에서는 매일 밤 수십 번씩 진짜 나와 가짜 내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거든. 나만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오래된 소설이 아주 다정하게 토닥여주는 기분이었어. 오늘은 고전문학이라 하면 흔히 생각하는 그 딱딱한 독후감 말고, 진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데미안》의 세계로 아주 깊숙이 같이 들어가 볼게.


데미안 <출처: 제미나이>


알을 깨고 나오는 그 아픈 순간의 기록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데미안》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단연 '알' 이야기일 거야. 에밀 싱클레어가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 사이에서 허우적거릴 때, 싱클레어의 멘토 같은 존재인 막스 데미안이 이런 말을 던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향한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스물넷에 첫 직장 인턴을 하다가 대차게 깨지고 집에서 이불 킥하던 날 밤에 이 구절이 다시 생각나더라고. 그동안 내가 믿고 있던 안전한 울타리, 그러니까 부모님이 바라는 착한 딸의 모습이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반듯한 스펙이라는 알이 사실은 나를 가두고 있던 감옥이었던 거야. 그 알을 깰 때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더라고.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서 매일 밤 베개 적시며 울었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영원히 그 좁은 껍질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을 거야. 지금 뭔가 불안하고 다 내팽개치고 싶다면, 그건 네가 고장 난 게 아니라 네 안의 새가 비상하려고 알을 힘차게 쪼고 있는 증거니까 너무 겁먹지 마.


내 안의 빛과 어둠을 모두 안아주는 법

싱클레어는 소싯적에 길거리에서 만난 건달 같은 아이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혀서 엄청나게 시달리잖아. 거짓말을 했다는 그 사소한 빌하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어린 싱클레어의 영혼을 갉아먹는데, 이 모습이 어쩜 그렇게 내 학창 시절을 빼다 박았는지 모르겠어. 우리 다들 마음속에 남들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흑역사나, 찌질하고 이기적인 욕망 같은 '어둠의 세계'를 품고 살아가잖아.


나도 대학생 때 친구 무리에서 은근히 소외될까 봐 속으로는 질투하면서도 겉으로는 세상 쿨한 척 웃었던 적이 있거든.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너무 가식적이고 싫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었어. 그런데 데미안은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야. 세상은 밝고 선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어둡고 거친 악의 세계도 함께 존재해야 비로소 온전한 세계가 된다고 말이야. 선과 악, 빛과 어둠이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섞이면서 진짜 나를 만들어가는 거래. 착한 아이로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내 안에 있는 찌질함과 질투까지도 "그래, 이것도 나다!" 하고 쿨하게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거짓말처럼 편해지더라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게 인간이니까.


모두가 찾는 나의 아브락사스 찾기 여정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개념이 바로 '아브락사스'야.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신인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어. 신은 무조건 선하고 악마는 무조건 나쁜 거라고 배우며 자랐으니까. 그런데 헤르만 헤세는 신과 사탄이 손을 잡고 있는 그 오묘한 지점이 바로 우리 인간의 진짜 내면이라고 말하는 거 있지.


내 친구 중 한 명은 미술을 정말 사랑했는데 집안 반대가 너무 심해서 법대에 갔거든. 낮에는 민법 책 보면서 밤에는 남몰래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 친구 눈빛에서 보던 그 절박함이 딱 아브락사스를 찾는 과정 같았어.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대로 사는 '선'의 길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갈구하는 '욕망'의 길이 부딪칠 때 그 지점에서 진짜 내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거야. 남들이 보기에는 엉뚱해 보이고 불안정해 보일지라도, 내가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나만의 신을 찾아가는 그 방황의 시간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웠어. 네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게 바로 아브락사스를 영접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야.


데미안이라는 존재가 주는 영원한 위로

소설 제목이 왜 하필 '싱클레어의 성장 일기'가 아니라《데미안》일까 늘 궁금했어. 데미안은 주인공이 아니라 뭔가 신비롭고 초월적인 존재로 그려지잖아. 싱클레어의 엄마인 에바 부인까지 포함해서 데미안이라는 존재는 싱클레어에게 외부의 자극이자 동시에 내면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해.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그런 '데미안' 같은 존재들이 스쳐 지나갔던 것 같아. 첫 회사에서 매일 울고불고 할 때 조용히 다가와서 따뜻한 라떼를 건네주며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배워"라며 씨익 웃어주던 사수 언니도 그랬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초라하다고 느낄 때 "넌 존재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준 오랜 친구도 그랬지. 우리는 누군가의 데미안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데미안을 만나며 성장하는 법이야. 힘들 때 혼자서 이 세상의 무게를 다 짊어진 것처럼 끙끙 앓지 마. 어딘가에는 네 속마음을 알아주고 너를 진짜 너답게 살 수 있도록 툭 밀어줄 데미안 같은 인연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결국 모든 방황은 나로 향하는 아름다운 길목이다

청춘이라는 단어 앞에는 늘 '불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잖아. 20대를 지나오면서, 그리고 앞으로 또 마주할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나는 또 얼마나 흔들리고 넘어질지 몰라. 취업, 인간관계, 사랑,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막함까지 마음속은 늘 폭풍 전야의 바다 같지. 하지만《데미안》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깨달은 건, 이 모든 방황과 흔들림이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우리가 겪는 모든 시행착오는 결국 단단한 내면의 집을 짓기 위한 밑거름이더라고. 방황한다는 건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 세상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바로 서기 위해 오늘도 조금씩 알을 깨고 나아가는 중이야.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고, 길을 잃어도 결국 그 모든 발걸음은 찬란한 진짜 나를 향해 가고 있는 거니까. 오늘 밤은 내면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나를 진심으로 토닥여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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