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이야기, 동물농장

조지 오웰의《동물농장》은 다들 한 번쯤 읽어봤거나 제목은 들어봤을 고전이지만, 사실 스무 살 언저리에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말하는 동물들이 나오는 신기한 동화책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알바를 하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쾅 맞은 것처럼 이 책의 진짜 의미가 다가오더라고요.


매일 야근을 강요하면서 "우리 다 같이 가족 같은 분위기로 열심히 해보자!"라고 외치던 매니저 언니의 모습에서, 농장을 장악한 뒤 점점 권력에 찌들어가는 돼지 나폴레옹의 모습이 겹쳐 보였거든요. 오늘은 그때의 충격을 되새기면서, 누구나 한 번쯤 삶의 부조리를 느낄 때 꺼내어 보게 되는 이 마성의 우화소설을 아주 낱낱이 파헤쳐 볼게요.


동물농장 <출처: 제미나이>


고요한 농장을 뒤흔든 혁명, 그 짜릿했던 첫 시작의 떨림

인간 농장주인 존스의 횡포에 지칠 대로 지친 동물들이 메이저 영이라는 나이 많은 돼지의 가르침 아래 어느 날 밤 쿠데타를 일으켜요.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일만 하던 동물들이 스스로 농장을 접수하고 ‘동물농장’으로 이름을 바꿀 때, 그 해방감은 정말 말로 다 못 할 정도였을 거예요.


저도 대학생 때 학생회 일로 밤을 새우며 부당한 학내 자치 규정을 뜯어고치겠다고 서명운동을 벌였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느꼈던 심장이 쿵쾅거리는 짜릿함과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모두가 평등하고 누구나 일한 만큼 가져간다는 ‘동물주의’의 칠계명이 농장 칠판에 떡하니 적힐 때만 해도, 이 세상에 더 이상 불행은 없을 줄 알았어요. 모든 동물이 자유로워지는 그 순수한 열정이야말로 이 소설의 초반부를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이자,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혁명의 로망을 건드리는 대목이에요.


착한 얼굴 뒤에 숨은 검은 속내, 영리한 돼지들의 소름 돋는 가스라이팅

하지만 혁명은 성공했는데 왜 세상은 더 살기 쪼들려질까요?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농장의 브레인이 된 돼지들, 특히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처음에는 동지들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시간이 갈수록 권력의 맛에 눈을 뜨게 돼요. 사과와 우유는 전부 뇌가 잘 돌아가야 하는 돼지들만 먹어야 한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데, 이게 진짜 무서운 게 뭐냐면 옆에서 스퀴일러라는 입담 좋은 돼지가 "이러다 존스가 다시 돌아온다!"라면서 가스라이팅을 시전한다는 점이에요.


저도 예전에 팀 프로젝트를 할 때 혼자서 다 떠안고 끙끙 앓으면서도 "우리 팀이 잘 되려면 네가 참아야 해"라는 선배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때 그 선배의 모습이 바로 이 소설 속 스퀴일러의 모습과 판박이라 책 읽다가 진짜 소름이 돋았지 뭐예요.


초심은 어디로 가고 남은 것은 숨 막히는 감시와 변해버린 룰

권력은 정말 사람을, 아니 동물까지도 이렇게 180도 바꿔놓을 수 있는 걸까요. 나폴레옹은 개들을 풀어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밤마다 몰래 위스키를 마시며 인간들이 입던 옷을 꺼내 입기 시작해요.


더 가관인 건 동물들이 잠든 사이에 몰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칠계명 뒤에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문구를 슬쩍 덧붙여 놓는 장면이에요. 룰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이런 치졸한 짓거리를 보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비합리적인 조직 문화에 치여 울컥했던 제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내가 맞다고 믿었던 상식들이 어느새 거대한 권력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그 묘한 배신감을 조지 오웰은 어쩌면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려냈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에요.


담장 너머 인간과 손잡은 돼지들, 거울 속에 비친 씁쓸한 우리들의 자화상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 더 이상 돼지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는 기괴한 풍경이 펼쳐져요. 돼지들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인간들과 어울려 술잔을 부딪치며 카드 게임을 하죠.


농장의 담장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동물들이 돼지와 인간의 얼굴을 번갈아 보지만, 이제는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다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묵직한 돌직구처럼 다가와요. 우리가 부당한 권력을 몰아내겠다고 악을 쓰고 싸웠는데, 결국 알고 보니 또 다른 괴물을 키워낸 꼴이 된 거니까요. 이 대목에서 저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와 회사, 혹은 크고 작은 조직들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나 역시 언제쯤 저 돼지들처럼 편법과 타협에 물들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씁쓸하지만 아주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아픔을 딛고 피어나는 희망, 부조리를 깨부수는 단단한 내면의 힘

비록《동물농장》의 결말은 눈물 날 정도로 씁쓸하고 답답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이 책을 덮으면서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아주 따뜻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부조리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질문을 던지고, 멍하니 당하고만 있지 않으려는 그 작은 반항심이야말로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군가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고 부당한 룰을 강요할 때, "잠깐만,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이 책이 조용히 건네주는 기분이었어요. 비록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고 가끔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깨어 있으려는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나폴레옹 같은 돼지들에게 완전히 지지 않을 거예요. 오늘 밤엔 왠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코를 킁킁거리며 진흙탕 속에서도 눈을 반짝이는 그 이름 모를 동물들의 생명력을 뜨겁게 응원해주고 싶어져요.


혹시 요즘 일이나 공부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거나 부조리한 일들 때문에 지쳐 있다면, 오늘 저녁 가볍게 이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스무 살의 풋풋했던 저처럼, 여러분만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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