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이야기, 신세기 에반게리온

안녕! 오늘은 내가 진짜 인생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해서 아주 제대로 덕질하는 마음을 담아 파헤쳐 보려고 해. 사실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난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아주 꼬마였겠지만,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OTT로 이걸 정주행했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해. 누군가는 그냥 로봇이 괴물랑 싸우는 옛날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니거든. 내 방 침대에 누워 새벽 3시까지 눈을 반짝이며 보게 만들었던 그 마성의 작품, 지금부터 내 주관을 듬뿍 담아 신나게 이야기 해 볼게.


신세기 에반게리온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강철 거인의 허울을 쓴 인간의 가장 여린 속살

에반게리온을 처음 보기 전에는 나도 당연히 건담 같은 거대로봇 액션물인 줄 알았어. 멋진 파일럿들이 로봇에 타서 화려한 레이저 총을 쏘며 사도라는 괴물을 무찌르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기대했지. 그런데 막상 까 보니까 이건 로봇물이 아니라 그냥 거대한 생체 병기를 매개로 한 인간 군상극이자, 정신분석학 보고서더라고. 에바 초호기나 2호기는 철갑을 두른 기계가 아니라 인류의 보이지 않는 공포와 억압을 담은 육체 같은 거였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어. 주인공 신지가 사도와 싸우다가 에바 안에서 온갖 압박감과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장면 말이야. 보통의 소년 만화라면 "네가 용기를 내야 해!" 하고 각성해서 한 방에 적을 무찌르겠지만, 에반게리온은 그딴 사이다 전개를 절대 안 줘. 오히려 신지가 토할 것 같아 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고, 대인기피증에 걸린 것처럼 웅크리는 모습을 아주 불쾌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내 친구 중 한 명은 이 애니를 보다가 신지가 너무 찌질해서 보기 포기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난 오히려 그 찌질함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어. 완벽한 영웅만 가득한 세상에서, 매 순간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도 꾸역꾸역 로봇에 타는 신지의 모습은 마치 시험 전날 가방을 싸 두고 현실 도피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 같았거든. 거대로봇이라는 화려한 장치는 결국 인간 내면의 외로움과 방어기제를 포장하기 위한 거창한 핑계에 불과했던 거야.


파국을 향해 달리는 세기말의 감성과 세련된 미장센

에반게리온이 지금까지도 트렌디한 레퍼런스로 꼽히는 이유는 연출과 비주얼이 진짜 말도 안 되게 감각적이기 때문이야. 1995년작인데도 지금 나오는 웬만한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세련됐어. 특히 사도가 도쿄-3 습격할 때 울리는 비상벨 소리랑, 붉고 노란 경고 색감이 화면을 채울 때의 그 긴장감은 지금 봐도 심장이 쫄깃해져.


오프닝 곡인 '잔혹한 천사의 테제'는 또 어떻고. 노래 자체는 엄청 웅장하고 신나는데, 가만히 가사를 뜯어보고 애니메이션 내용과 매치해 보면 세기말의 우울함과 운명론적인 비장미가 온몸을 감싸. 노래방 가서 이 곡 부르면 친구들이 다 같이 떼창하면서도 묘하게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곤 하지.


또, 사도가 파괴될 때 나타나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폭발이나, 레이나 아스카가 방에 혼자 앉아있을 때의 기묘한 구도 같은 것들은 애니메이션을 넘어 하나의 현대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줘. 쓸데없이 디테일한 기계 묘사나 지오프론트의 압도적인 스케일도 볼거리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에 꽂힌 건 그 감성적인 공백이었어.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굳이 대사가 없어도 그 시대의 불안함과 공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랄까.


도망쳐도 괜찮아,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가시 돋친 구원

에반게리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고슴도치의 지름'과 '인류보완계획'이야. 타인과 가까워지면 서로 상처를 주고, 멀어지면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의 모순된 본성을 고슴도치에 비유한 건 진짜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지. 아스카는 공격적인 태도로 자기를 방어하고, 신지는 타인에게 거절당할까 봐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잖아. 그 모습이 너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고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훔쳐본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어.


사람들은 보통 에반게리온 TV판 결말을 보고 멘탈이 나간다고 해. 갑자기 실사 영상이 나오거나 축하해 마지않는 연극 무대 같은 연출이 펼쳐지니까. 하지만 난 그 결말이 안아주고 싶을 만큼 따뜻하다고 느꼈어. "나는 나를 사랑해도 돼", "여기에 있어도 괜찮아"라는 신지의 깨달음은, 매일 밤 자존감 바닥을 치며 누워있던 나에게 건네는 거대한 위로처럼 다가왔거든.


타인이라는 존재는 나를 찌르는 가시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게 진짜 삶이라는 메시지는 생각할수록 깊은 여운을 남겨. 완벽하게 상처받지 않는 유토피아 같은 건 없지만, 내 마음의 AT필드를 조금은 낮추고 손을 내밀어 볼 용기를 준달까. 에반게리온은 나에게 단순한 덕질 대상을 넘어, 내면의 어두운 구석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긍정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성장통 같은 작품이야.


무수한 해석을 낳은 미스터리와 덕심을 자극하는 세계관

이 애니가 진짜 대단한 건 종교, 철학, 신화, 생물학을 아주 기괴하고 매력적으로 비벼놓은 방대한 떡밥들에 있어. 카발라 사상, 사해문서, 아담과 리리스, 게이온 이론까지. 중학생 때였으면 머리 아프다고 책을 덮었겠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이스터에그 파헤치듯 유튜브 해석 영상을 밤새도록 찾아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더라고.


사도가 왜 하필 그런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는지, 제레라는 비밀 조직은 왜 인류를 고통스럽게 만들면서까지 인류보완계획을 추진하는지 하나씩 맞춰가는 재미가 마치 거대한 방탈출 게임을 하는 것 같아.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가 의도했든 안 했든, 팬들이 직접 해석을 더하고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작품의 수명이 몇십 년 동안 연장된 셈이지.


내 주변에도 에반게리온 굿즈만 모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방에 놀러 가면 초호기 피규어부터 펜펜 인형까지 아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완벽하게 정답을 떠먹여 주지 않고 관객의 상상력과 탐구심에 모든 걸 맡기는 이런 불친절한 세계관이야말로, 과몰입을 사랑하는 우리 세대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하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


씁쓸한 여운 끝에 찾아오는 나만의 에바를 향한 찬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분명 친절하고 달콤한 애니메이션은 아니야. 오히려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하고 난해하며, 우울증을 유발하는 기괴한 작품으로 기억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모든 불완전함과 삐걱거림 속에서도 이 작품이 찬란하게 빛나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를 향한 애정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각자의 에바를 타고 사도와 싸우며 살아가잖아. 매일 마주하는 막막한 현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 그리고 내면의 불안이라는 사도 말이야. 도망치고 싶고 전부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그 끝에 내가 찾고자 하는 나와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일 거야.


세상의 수많은 비판과 난해하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는 건, 이 작품이 내게 "그래도 너는 살아갈 가치가 있어"라고 툭 어깨를 쳐주는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이야. 비록 세상이 끝날 것처럼 멸망의 위기를 겪더라도, 그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는 우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니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문득 문득 꺼내보고 싶어지는, 내 마음속 영원한 구원의 방주 같은 작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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